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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신 충격이 너무 커서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

                 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상담을 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
                 는 겨우겨우 아주 잠깐씩만 언급했다.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
                 은 듯했다.

                    케이틀린은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부득이하게 아버지의 기억
                 을 떠올리긴 했지만, 나는 아직 지나간 상처를 들추어낼 때가 아니

                 라고 생각했다. 케이틀린이 불안에 휩싸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케이틀린은 아버지를 여읜 뒤 극도의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

                 하기 위해 만들어둔 방어기제를 지금 써야했다. 눈앞에 닥친 남편
                 의 죽음에 대처할 ‘감정적 자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

                 를 새삼스레 들추어내면 현재 상황에 상당히 복잡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케이틀린은 아일랜드에서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났다. 주위엔 허

                 물없이 마음 터놓고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남자를 대할
                 때는 사뭇 달랐다.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 싶으면 기쁘게 해줘야 한

                 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남자가 원하는 걸 우선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건 등한시했다. 끝에 가서는 가슴이 텅 빈 듯 공허하고 이용당한 느

                 낌만 받았다.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팀이라는 남자를 만났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케이틀린이 남편 데이비드를 사랑한 건 확실했다. 데이

                 비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인생의 반려자로 택했고 아이들의
                 아빠였으며 자상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술에 빠져 사는 모습에 존중
                 하고 싶은 마음이 확 사라졌다. 신뢰가 산산이 깨지고 욕정마저 깡

                 그리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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