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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위층만 보여주지만 본 모습은 어두운 아랫부분이라고 했다. 그

리고 나와 함께 그 ‘어두운 아랫부분’을 들여다봤다.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에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상태였다. “너무 슬퍼서 자신감
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어요. 연료 저장고가 텅 빈 채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느낌이에요. 뭘 해도 전보다 힘들고 결국 다 망쳐버릴
것 같아요. 쉴 새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이 화가 언제쯤 사그라

질지 막막하기만 해요.”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날마다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과제를 해보기로 했다. 잘 먹기, 좋은 식재료를

살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 하기, 가족을 위해 요리하기 등 감
정 조절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실천하기로 했다.

데이비드는 알코올 중독 때문에 그동안 직업적으로 자신의 본분
을 다하지 못했다. 자신감이 결여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처지였다.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살날이 늘어나는 건 아니었다. 며칠간 몹시 피곤해하더니
그럭저럭 기운을 차리게 됐다. 술은 완전히 끊었다. 그래도 케이틀

린은 혹여 진통제 때문에 술에 빠졌을 때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불안
해했다.

케이틀린은 남편과 죽음을 놓고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
았다. 남편은 상담에 함께 오는 것도 원치 않았다. 어떻게든 자식들

을 위해 가능한 오래 살고자 했으며 앞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처
럼 행동하려고 했다. 인생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음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키우며 용기를 냈다. 케이틀린은 이런 남편이 못내 자랑스러

운 듯 그가 무시무시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용감하게 품위를 지키고

31 1장 배우자를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