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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토록 제도의 정당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제도가 우

                        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제도
                        속에서 살아간다. 제도는 우리가 얼마의 자유를 누릴지, 어떤 기회를

                        가질지, 얼마의 자원을 나눠 가질지, 어떤 의무를 짊어질지부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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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게 될지까지 결정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족적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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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대로 자아의 형성, 인격의 수립, 어떤

                        언어와 관념으로 세상을 이해하는지에서 삶에 대한 가장 소소한 감정
                        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우리가 어떤 제도환경 아래서 성장했는지와

                        관련이 있다. 중립적인 제도는 없다. 제도는 언제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구속하고 그 틀을 잡으며, 우리의 삶을 이끈다. 이런 점

                        에서 정치는 우리 삶의 어떤 영역보다도 절대적인 우선순위를 갖는다.
                        예를 들어, 시장과 가정은 정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에

                        종속되어 있다. 국가가 바로 시장제도와 가정제도 자체를 규정하기 때
                        문이다. 과거 중국에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일부

                        일처제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변화하는 데 따라 우리 개인의
                        운명도 필연적으로 변한다.

                          한 국가의 제도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곳곳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삶에 깊이 영향을 끼치고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면, 자유의

                        식과 가치의식을 가진 독립적인 개체에게, 자신의 삶을 중시하고 자신
                        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주체에게 정치는 ‘할까 말까’




                        3 이 점은 다음을 참고해볼 만하다. Rawls, A Theory of Justice,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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