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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하고 싶어하더라도 논의의 출발점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도덕
                    이 사람의 입맛처럼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어서 객관적이지 않다 보니

                    혼잣말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태도가 서로 다른 성
                    질의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종종 한데 뒤섞여 있어 정치의 도덕 전

                    체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만다. 모든 이의 근본적인 행복과 관계된
                    공공 의제에서 도덕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은 성

                    립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의 도덕적 경험과 우리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도덕적 판단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6






                      내 강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정치철학은 규범적인 이론
                    학문으로서, 공부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당장 어디에 써먹을 구석

                    을 찾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학생이 이 강의를 택해 공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적잖은 학생들은 나에게 이토록 공정하지 못

                    한 사회를 도대체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알 길이 없어 이 강의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란 어떤 사회입니까? 학생들은 빈부격차, 비민주적인 정치, 언론자유
                    탄압 등을 예로 든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그런 판단의 근거는 무엇입

                    니까? 학생들은 서로 다른 이유를 대가며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예



                    6 사실 여기서 나는 사전에 방법론을 하나 마련해두었다. 즉, 하나의 도덕이론이 합
                     리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이 도덕이론이 우리 일상 속의
                     도덕적 경험을 얼마나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성찰을 거
                     친 뒤에도 변함없이 받아들이는 도덕적 판단을 얼마나 철저하게 정당화하는지다.
                     이런 생각은 주로 롤스의 ‘반성적 평형 상태(reflective equilibrium)’에서 영감을 얻
                     었다. Rawls, A Theory of Justice, pp. 40~46.




                38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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