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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 행사가 반드시 도덕규범을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규범은
                        폭력과 거짓말, 공포가 아니라 자유와 이성을 가진 개체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적 이유에 근거한다. 오직 이런 이유가 시민들
                        에게 광범위한 인정을 받는 국가야말로 정당성을 가진 정치공동체라

                        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을 권력 쟁탈과 서로 속고 속이는
                        암투로, 적과 나를 구분하는 계급투쟁으로,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는

                        권모술수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정치에 도덕을 요구
                        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의 본질을 오해한, 실용적이지 못하고 성숙하지

                        도 않은 행위가 되어버리며, 결과적으로는 늘 선의로 저지른 해악이
                        되고 만다. 이런 현상들이 현실정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정말 정치의 근본적인 관심사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 상황이 그러한 것과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현실정치가 온갖 악으로 가득하니 이런 악이 합리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이를 정치생활의 시작과 끝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와는 정반
                        대로 바로 이런 악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제도를 통해 인간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고, 개체가 억압과 압제를 받지 않게 하려고 노
                        력한다. 둘째, 동서양 정치사상의 역사는 공자, 맹자, 플라톤, 아리스토

                        텔레스에서 로크, 루소, 칸트와 마르크스를 거쳐 오늘날의 수많은 정
                        치이론에 이르기까지 서로 관점은 다를지언정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이상적인 정치질서를 세우고,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합리적인 대우
                        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공통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이런 정치도덕

                        의 틀은 우리가 자신의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도와주는 한편, 인간사회의 정치적 진보를 실질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Part 1 정치와 도덕의 공존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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