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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사건에 따른 장애가 아니라 몸과 뇌, 신경계의 장애로 보기 시
                       작했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은 또 다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다.
                       곧 뇌와 몸이 본질상 적응적이라면, 트라우마 반응의 흔적도 병리의

                       증거가 아니라 적응을 위한 시도여야 한다.
                        신경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임상 장면에서 관찰되는 고착과 저항,

                       치료할 수 없는 진단, 성격 이상으로 인한 행동은 그저 ‘자신을 지켜
                       줄 유일한 보호자가 바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이라는 위험천

                       만한 현실에 마음과 몸이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보여준다. 개별 증상
                       은 성장기 아동이나 위기에 처한 성인에게 그럴듯한 안전함을 만들

                       어주려고 몸이 만들어낸 기발한 해결책이었다. 이제 나는 내담자가
                       말하는 트라우마 관련 문제들이란, 실제로는 내담자의 삶에 무슨 일
                       이 일어났는지를 그가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말

                       해주는 ‘붉은 무공훈장’이라고 믿는다.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는

                       “왜 나는 낫지 않나요? 치료자와는 아주 잘 지내는데 증상은 하나
                       도 줄지 않아요. 치료가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나에게 무슨 문제라
                       도 있는 걸까요?”라고 물었다. 내담자와 치료자에게서 무엇을 시도

                       했고 실패했는지를 몇 번이고 들었지만 ‘실수’가 있다거나 치료법
                       을 잘못 선택한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자문해주는 관점에서 치료

                       자와 내담자 모두 보지 못하는 뭔가가 있었다. 바로 내담자의 내면
                       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담자는 적응하기 위해 ‘자기’와 정

                       체성 identity이 극단적으로 분리되어야 했고, 이로 인해 내면세계가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또 하나 알아차린 것은 해리성 분리 dissociative

                       splitting가 트라우마에 적응하는 정상 반응이라는 점이라고 알려줬을
                       때 내담자들이 안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먼저 구조적 해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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