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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대학원을 나온 기술직인 에리나와 달리 가호는 사
무직이다. 사무 전반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비서 업무도 맡
고 있다.
“그나마 차를 직접 내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편해졌
는지 몰라요.”
방문 고객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도 가호의 일이다. 손님
용 다기에 녹차를 따른다. 손님께 차를 낼 때는 차받침을
손으로 받치는 게 예의라고 입사 때 연수에서 배웠다. 그
러나 최근 몇 년 새 소형 페트병으로 된 인스턴트 차를 개
봉하지 않은 채 한 병씩 회의실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으
로 바뀌었다.
“잘됐잖아. 차 심부름 같은 건 시대착오적이야. 게다가
그 일을 여직원에게 시킨다니 명백한 성차별이잖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에리나가 기세당당하게 말한다.
“맞아요. 마시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준비하면 되잖아
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는
지 몰라요.”
이래저래 낭비가 심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위태로
운 나날이긴 했지만 회사 분위기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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