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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약을 먹으며 책에서 멀어졌다. 일주일에 서너 권
씩 읽던 사람이 10년 넘게 한 권도 읽지 못하게 됐다. 제이미슨은 양극성
장애 조절에 사용하는 약물인 리튬 lithium 이 유발하는 신체적 부작용(메스
꺼움, 구토, 가끔 나타나는 독성 등)보다 심리적 부작용(집중력 저하, 주
의력 유지 시간 단축, 기억력 저하 등)을 더 걱정했다. 문장을 빽빽하게
메모하며 여러 번 다시 읽으면 약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열선을 깔아놓은 도로에서 눈이 사르르 녹아내리듯 읽은 내용이
사라져버렸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리튬을 삶에 우아하게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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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규칙’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번거롭게 노력하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 쓰지 마라. 철학적으로 생각하자. 어차피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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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다
른 우울장애 환자처럼 제이미슨이 회복에 이르는 핵심 단계 역시 다시
읽을 수 있는 때일 것이다.
시인 수전 안토네타 Susanne Antonetta 도 양극성장애 때문에 책을 끝까지
읽고 싶어도 다 읽지 못하는 읽기장벽 readers’ block (영어에서 글쓰기가 막혀 애
를 먹는 상황을 뜻하는 쓰기장벽, 곧 writer’s block이라는 표현을 활용한 저자 고유
의 용어로,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나 읽을 수 없는 문제를 통칭한다‐옮긴이)
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조각난 마음 A Mind Apart 》에서 “책을 읽고 싶
었고 읽기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단어들이 페이지에서 미끄러지거나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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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히거나 강물처럼 굽이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정 단어를 혐오하게
되면서 자석의 양극이 서로 밀어내듯 읽기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
들어가며: 감춰졌던 ‘읽기’의 세계를 찾아서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