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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자신을 관찰해보면 읽기에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
심지어 이해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자나 기
호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교정쇄를 읽을 때면 내가
읽고 있는 글의 의미는 완전히 놓쳐버린다. 문체를 수정하려면 다시
한번 정독해야 할 정도다. 반면 흥미로운 소설을 읽을 때면 오탈자는
신경 쓰지 않고, 등장인물의 이름에 몇몇 사소한 특징이 있다거나 길
거나 짧거나 x나 z 같은 특이한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빼고는
거의 기억하지도 못한다. 글을 낭송할 때는 단어 발음의 인상이나 단
어 사이의 간격에 집중하느라 글의 의미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
러다 피곤해지면 낭송을 듣는 사람은 이해하는데 정작 나 자신은 무
엇을 읽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읽게 된다. 20
프로이트가 언급한 세 가지 읽기 유형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읽기로
볼 수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프로이트의 낭송을 들은 사
람까지 엄밀히 포함시킨다면 ‘해독 없는 이해’라는 네 번째 유형이 추가
된다). 읽기 과정은 단어 인식 recognition (해독 과정의 일부로서 글자가 글자라는
사실이나 글자 모양, 책의 구성요소 등을 알아보는 일‐옮긴이)과 이해라는 두 가
지 핵심 요소로 나뉘며 어느 쪽에든 중점을 둘 수 있다. 인지 자원을 해독
에 더 많이 쏟을수록 이해에 사용할 자원은 줄어든다. 오늘날 교육학자
들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이런 관계를 정설로 받아들인다. 책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다 읽기는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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