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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죽었고 이로 인해 그는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개
인적으로 성 예로니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혜와 배움의
오라를 풍기는 뒤러의 이 그림은 무척 좋아한다. 그림 속 책상
을 그대로 본떠 내 책상을 제작했을 정도다.
성 예로니모의 책상 옆에는 해골이 하나 있는데 이는 중세
철학자들의 이미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징물이다. 메멘토
모리, 자신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나
의 뇌스캔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뇌스캔 영상을 뚫어
져라 들여다보아도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진 않
는다. 나의 뇌는 노화하고 있고 기억력은 예전만큼 좋지 않다.
더 천천히 움직이고 더 천천히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점점 심해지는 전립선 비대증 증상들이 노화
가 아니라 암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하지
만 이제껏 병은 의사들이 아닌 환자들만 걸리는 것으로 생각
했다. 뇌스캔 검사를 받고 20개월 후 나는 진행성 전립선암을
진단받았다. 몇 년 동안 전형적인 증상을 겪고 점점 악화되는
것까지 느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은 겁쟁이처럼 굴고 있었으면서 이 상황을 초연
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암에 걸렸다는 사
1 부정, 받아들일 준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