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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갓난쟁이 때부터 숫자 마니아였다. 숫자 세는 법을 배우자

                    마자 숫자 잇기 책들을 공략해나갔다.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독일의 슈바르츠발트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그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숫자들을 연결하여 끝없이 눈사람들과 구름들을 만들어냈

                    다. 몇 년 후에는 할머니가 디지털 자명종을 사줬다. 밤마다 나는

                    침대에 누워 LED가 반짝이는 시계를 보면서, 그 네 숫자를 이용해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수치를 다 찾아보았다. 수학은 학교에서 내

                    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결국 나는 대학원에 가서 계량경제

                    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 모형의 바탕이 되는 통계에 관해

                    서도 많은 내용을 배웠다. 대부분 수치를 계산하고 분석하며 프로

                    그램을 짜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숫자들을

                    잇던 어린 시절에 했던 일을 다시 하고 있었다. 즉 패턴을 찾고 있
                    었다.

                      숫자는 삶에서 다른 역할도 했다. 내가 도달한 수준을 알게 해준

                    것이다. 다섯 살부터 스물여섯 살 사이에 나는 초중등학교과 대학

                    교에서 점수와 학점을 받았고 그 점수로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가

                    늠했다. 점수가 낮으면 진창에 빠진 기분이었고 점수가 높으면 하

                    늘을 날 것 같았다. 배운 내용을 며칠 만에 잊어버려도 평균 성적만





                                                                머리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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