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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결국 주문하지 않았지만. 더우면 에어컨부터 틀기보다 일
단 샤워부터 한 뒤 선풍기 날개를 닦아 바람을 쐬었다. 그래도
더우면 당연히 틀었지만.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외식을 줄
였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사들이는 일을 줄였다. 욕망을 부정하
는 것도 아니고, 일시 정지하는 습관만으로도 절약이 됐다.
본격적으로 봉투에 하루 식비만 넣어 사용하기로 한 첫날, 마
트에 장을 보러 갔다. 팽이버섯 세 봉지, 느타리버섯 두 봉지, 총
알새송이버섯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합치니 5,000원 정
도였다. 남은 돈은 만 원 정도. 역시 고기가 빠질 수 없다. 만 원
안에서 고기를 사기로 했다. 돼지 목살을 들었다. 늘 사던 거였
다. 대신 식비 1만 5,000원을 살짝 초과해야 했다. 그렇지만 난
목살이 ‘필요’했다. 돼지 앞다리살이나 뒷다리살도 쫄깃한 맛
이 다르지 않음을 알지만, 목살만의 고유한 후광이 있다.
목살을 냉큼 집으려던 중 가격 행사 중인 돼지 앞다리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저렴한 데다가 목살보다 양도 두 배. 하
루 예산 1만 5,000원 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1만 5,000원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아무렇지 않게 목살을 내려놓고, 돼
지 앞다리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날 된장을 진하게 풀고,
통마늘과 생강을 과감하게 털어 넣어 보드라운 수육을 해 먹었
102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