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P. 25

지출은 언제나 정당했다. 외식을 결심했을 때는 집밥하는 수
                 고를 줄이기 위해, 키즈카페를 결심했을 때는 육아의 고단함을
                 덜기 위해 진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비에 정당한 이

                 유를 잘도 찾아냈다. 필요한 만큼 쓰다 보니 늘 예산을 초과하

                 거나 아껴 썼다 싶은 달에도 예산에 딱 맞게 썼다. 예산을 초과
                 할 때면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니까
                 사야 했다. 그뿐이었다.

                   하루 식비를 1만 5,000원으로 정하고 식비 가계부를 쓰기 시

                 작하자 지출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졌다. 한 달이 지나 가계부
                 를 정리할 때면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심정이었다. 후회하거나
                 안도하거나, 늘 둘 중 하나였다. 가계부를 쓰기 전까지는 내가

                 후회할지, 안도할지도 몰랐다. 예산만 세워뒀지 예산과 비례해

                 얼마나 썼는지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살림을 하면서도 살림
                 에 깜깜했는데, 늘 머릿속에 하루치 식비 숫자가 둥둥 떠다니
                 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건 ‘필요’에 대한

                 생각이었다.

                   옷은 유행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린넨 바지의 옆선이 투두
                 둑 다 터졌을 때 샀다. 마음에 드는 원목 티슈 케이스를 발견할
                 때는 ‘이걸 갖게 되면 정말 만족스러울까?’ 하고 열 번은 자문








                                                               101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