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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는 말의 반복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자신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
에 쉽게 빠진다. 이런 생각과 감정에는 초조, 우울 등의 문제가 쉽게
뒤따라온다. 정말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외동딸을 잃은 산수이의 비통함을 언어로는 효과적으로 응원해
줄 수 없다. 산수이는 처음 상담을 받으러 왔을 때 고개는 숙이고 몸
은 허물어져 있었다. 이따금 손으로 무릎을 짚어 턱을 괬고 멍하게
있거나 머리를 감싼 채 통곡했다. 산수이가 울먹이며 털어놓는 말들
을 조용히 듣고 있자니 산수이의 슬픔, 자책, 앞날에 대한 절망이 느
껴졌다.
“선생님, 말 좀 해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는 행복해질
수 없을까요? 다시는 힘을 낼 수 없을까요?” 산수이가 고개를 들어
물었을 때 나는 산수이에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슬픔 속에 빠져 살게 될까 봐 두려운 거네요, 그렇죠?”
“네, 남편은 이미 털고 일어섰어요. 남편은 저도 빨리 일어서길
바라요. 하지만 저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이번 주에는 아이 생
각을 하다가 거의 숨이 막힐 뻔했어요. 바닥을 구르고 벽을 들이받고
싶을 정도였어요. 아이는 저와 17년을 같이 살았어요. 이제는 볼 수
도 만질 수도 없다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아요. 남편이 한 정신과 의
사를 추천해줘서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희
망이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아이 사진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아요.”
024 1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