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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와 건축의 오래된 만남



                지금으로부터 4세기 전에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이 설계한 런

              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에 다다르려면 돌계단을 400개 정도 올
              라야 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돔의 중간쯤에 돔 안쪽 가장자리

              를 빙 둘러 감싸는 폭이 좁은 발코니가 나온다. 위스퍼링 갤러리

              Whispering Gallery라는 발코니다. 두 사람이 돔 안쪽의 넓은 공간을 사이
              에 두고 서로 반대편에 서서 이야기할 때,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멀

              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에게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그 실험을 해보며 매우 즐

              거워한다.
                물론 크리스토퍼 렌이 그런 놀이를 하라고 세인트폴 대성당을 설

              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세인트폴 대성당과 런던 사람들이 ‘렌의 성

              당들     a flock of Wrens’이라고 부르는 그 부근의 여러 교회를 설계한 것은
              1666년 런던 대화재로 무너진 건물들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성가

              대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세인트폴 대성당 내부를 돌아다니면, 카
              운터테너의 수정처럼 맑은 목소리가 위스퍼링 갤러리를 지나 돔의

              꼭대기까지 울려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거
              나 앰프로 소리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어찌나 선명하고 맑

              게 들리는지, 어디에 서 있든 간에 바로 옆에서 노래를 하는 것 같
              다. 그 순간, 그 넓은 공간에서 경외감과 아울러 평화로운 기분이 든

              다. 크리스토퍼 렌이 이곳에 돔을 지을 때 의도했던 그대로.






              50  힐링 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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