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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 부응하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기술의 요구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 언제부터 환자보다
병이, 치유보다 진단과 치료가 중요해졌을까?
19세기에는 병실에 넓은 창이 있었고, 천장에 채광창을 설치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조명기구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실내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지만, 환자들의 치유를 돕는다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에 병원들은 햇빛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설계되었다. 남
쪽으로 넓은 창이 나 있었고, 각 병동 끝에는 환자들이 편히 앉아서
건강에 좋은 햇빛을 쏘일 수 있는 일광욕실이 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햇빛으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크게 유행했다. 항생제가 발명되기 전인 당시에 각종 전염병
들, 특히 결핵은 큰 재앙이었다. 그리고 햇빛과 열린 창은 공기를 정
화시키는 무척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로 여겨졌다. 1860년에 플로
렌스 나이팅게일은 어두운 방은 해롭고 햇빛이 잘 드는 방이 건강에
좋다고 썼다. 넓고 바람이 잘 통하며 밝은 방이 ‘플로렌스 나이팅게
일 병동’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1877년에는 햇빛으로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음을 입증한 논문이 영국 왕립학회 Royal Society에 제출되었
다. 1903년에는 스위스의 의사 오귀스트 롤리에 Auguste Rollier가 알프스
산맥 고지대에 햇빛을 이용해 병을 고치는 병원을 개업했다. 이 병
원은 주택과 병원을 설계하는 데 태양을 활용한 1920년대와 1930
년대의 모더니즘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로저 울리히의 1984년 연구는 이런 전통을 토대로 삼되 조금 변
1. 심리학이 건축을 만났을 때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