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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불안증을 만화 〈벅스 버니

                     Bugs Bunny〉에 나오는 커다란 빨간 괴물big red monster이라고 상상하곤
                     한다. (생김새가 궁금하면 구글에 검색해보라.) 불안증은 내 바깥에

                     앉아있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괴물이다. 지금은 내가 불안증 때문에
                     괴롭다 해도,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 내가

                     지금 당장 어떻게 느끼든 간에 불안증은 결코 나의 영구적인 일부

                     가 아니다.
                       둘째, 불안증은 틀린 말을 잘한다. 불안증은 멍청하다. 불안증을
                     겪는 사람들이 멍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증 자체가 멍청하

                     다. 불안증에게 2+2가 무어냐고 물으면, 불안증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끝에 “삼각형” 또는 “감자칩 한 봉지,” “기념우표”같이 얼토
                     당토않은 답을 할 것이다. 불안증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도 불안증은 당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도 무시무시한 일이라
                     고 당신을 설득하려 애쓸 것이다. 내 불안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

                     해 여름, 불안증이라는 괴물은 내가 무엇을 보고 무슨 일을 하든 무
                     서워 죽겠다고 난리였다. 불안증은 바쁜 상황, 뜻밖의 사건, 거미,

                     잠자는 시간, 깨어있는 시간, 운동화, 벽 등 모든 걸 무서워했다. 불

                     안증의 어리석음에 넘어가 무너질 때면, 나는 아름다운 산과 나무
                     가 있는 사진을 봤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풍경을 바라보

                     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사진을 보고 있는데도 다시 불안증
                     이 급습해오면,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넌 정말 멍청해. 너같

                     이 멍청한 놈한테 지지는 않을 거야. 이 멍청한 괴물, 넌 이제 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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