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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해.” “알겠어요, 엄마……” 하지만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
랐다. 의료보험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을 다니는 고학력 여성이었
지만, 정신과 진료실에 앉아있는 내 모습은 여전히 상상이 되지 않
았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그건 우리 할머니가 평생 우울증을 치
료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아니면 우리 엄마가 약은 복용하
면서도 상담치료는 거부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책을 그렇게나 많이 읽었는데도 나 같은 라틴계 주인공이 정신질
환을 제대로 치료 받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날 밤으로부터
엿새가 지난 뒤, 나는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정신과 진료실
에 앉았다. 이런 치료는 부자 아니면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자처럼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나 받는 게 아닌가? 나무랄 데 없이 건강
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 있는 스물다섯 나에게 이 치료가 필
요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의사 앞에서 한번 말문이 트이니
마음속 상처가 쏟아져 나왔고, 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십 년 뒤, 나는 데뷔작 《이유가 없어질 때》를 계획하고, 초안을 썼
다. 소설 속 주인공 에밀리 디킨슨은 우울증을 겪고 자살을 시도한
다. 글을 쓰면서 나는 왜 두 핵심 인물인 에밀리와 엘리자베스가 모
두 자살하려 하는지 의아해하는 독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
실 둘에게는 인생의 큰 시련이라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일부 독
자에게는 두 주인공의 문제가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심각하게 느껴지
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독자라면 ‘아, 그런 (끔찍한) 일을 겪어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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