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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희망은 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1997년, 비오는 2월의 어느 밤이었다. 그날 밤, 우울은 더 이상 일
                     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내 삶 구석구석을 파고든 질병인 것이 명확

                     해졌다. 나는 일을 마치고 자동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는 내내 흐느

                     껴 울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는 것 같았
                     고,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내 안의 좋은 것들이 모두

                     엉켜버린 것 같았다. 절망감이 들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한 번도 자해나 자살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도망가기 위한 계획은 열심히 세웠다. 이를테면 차를 타

                     고 어디론가 멀리 가버린다든지, 평화봉사단에 합류해 전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자원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
                     다. 어딘가로 탈출이 필요할 만큼 나는 많이 아팠다. 때로는 사고를

                     낼까도 생각했다. 차를 운전하다 죽지는 않을 정도로, 하지만 병원

                     에 입원할 수는 있을 정도로 세게 나무를 들이박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내가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내 진짜 문제를 알

                     아봐줄 전문가가 나타날 것이고,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도움을 청할 수 있다거

                     나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자란 환경에서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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