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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누군가에 털어놓고 나서도 몇 달이 지나서야 서서히 그
고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부모를 모두 잃었
지만, 충분히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해 슬퍼하고
미안해할수록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덩달아 올라오고, 그러
면 그 분노 때문에 자신이 망가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
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감정 하나가 제대로 받아들여
지지 않고 억눌려 있으면 그와 관계된 다른 감정들도 모두
숨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면의 고통은 심하지만, 스스
로도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공연히 다른 사람들과 갈
등을 빚기도 하지요.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슬픔도 받
아들일 수 없었던 혜진은 아주 조금씩 자신이 잃어버린 것
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고
마움과 미안함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돌
보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죄책감에 대해 조금씩 이야
기하면서 차갑게 얼어붙었던 혜진은 폭풍우 같은 눈물을 쏟
았습니다. 그동안 꽁꽁 싸매고 방치했던 자신의 마음을 열어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황망히 사라져버린 아버지와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고통
을 천천히 들여다봄으로써 비로소 지금의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결된 감정들을 모두 인정하고 나서
28 내 감정을 읽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