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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비로소 자신의 처지에 대해, 고통에 대해 슬퍼할 수 있었
지요.
자신의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혜진은 자기 자신
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힘든 일은 남편
에게 의논하고 도움도 요청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자
기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늘
예민하고 잔뜩 날이 서 있던 혜진은 점차 편안해졌고, 가족
들에게 걸핏하면 화내고 짜증내던 습관은 어느새 사라졌습
니다.
슬픔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실망하거나 절망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입
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 어색하거
나 어렵기도 합니다. 슬퍼한다는 것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징
표라고 여겨 아무렇지 않은 척하거나 일부러 더 부산하게 행
동하면서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것만이 슬픔을 표현
하는 방식이 아니지요. 가슴을 뜯으며 요란하게 통곡하는 사
람보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여느 때처럼 출근
해 맡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의 얼굴이 더 슬프게 느껴지
기도 합니다. 슬퍼서 화를 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코믹영화
1부. 알 수 없는 감정들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