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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회사에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하

                 루에 네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말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으로 전시회로 놀이공
                 원으로 돌아다녔습니다. 자신을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았습

                 니다. 남편 민욱은 그런 아내가 점점 더 걱정되었습니다. 아

                 내는 늘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런 날들이 일 년이 넘
                 도록 계속되면서 눈에 띄게 예민해졌습니다.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냈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

                 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자존심이 강해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받기를 꺼려했던 혜

                 진은 친구는 물론 남편에게도 자기 속을 내비치지 않았습니

                 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슬퍼하지도 못했지요. 어머니에 대한 사실도, 아

                 버지에 대한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했지요.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간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

                 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

                 지요. 굴뚝을 막아놓은 집의 연기가 창틈, 문틈으로 새어나가
                 듯 그녀의 고통은 여기저기서 비집고 나왔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혜진은 비로소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천천히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혜진은 복잡한 사정을 처음으







                                                    1부. 알 수 없는 감정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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