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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대와 방임에 직면하면,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그
런 일이 발생하면 압도되지 않고 심리적으로 온전히 생존하기 위
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충분한 심리적 거리를 둘 필요를 느낀
다. 약간의 자존감, 가족을 향한 애착, 미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려
면 피해자는 일어난 일과 단절하고,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거나 기억
하지 못하고, 그 일이 일어난 ‘나쁜 (피해자) 어린아이’를 ‘내가 아
니’라고 부정해야 한다. 자신이 학대당했다는 사실과 단절되어 스스
로에 대해 조금의 ‘좋은’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학대받은 아이는 인
간 두뇌가 타고난 분리 또는 구획화하는 능력을 이용한다. 이 ‘좋은
아이’는 조숙하고 다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며 완벽주의적
이고 자기비판적이거나 조용하고 수줍음을 탈 수 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에게 위험한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고 더 안
전할 방법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분리 또는 파편화는 독창
적이고 적응적이면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생존전략이다. 거부당한
‘내가 아닌’ 어린아이를 곁에 두지 않으려면, 다시 말해 의식의 바
깥에 두려면 외상사건이 종결된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단절을 위
해 계속해서 해리・부인・자기혐오에 의존해야 한다. 마침내 이 아이
는 가장 취약하고 가장 상처받은 ‘자기들’을 부인하는 대가로 안전
부재, 학대, 배신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한 사람으로 기능하는 능력이 진짜 자신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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