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P. 30
문제가 해결되어 평화가 찾아오기보다는 내담자가 암묵기억과 트
라우마 반응에 압도되어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Herman,
1992; Van der Kolk, 2014 . 치료자들은 과거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빈
번하게 암묵적 ‘재경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치료자와
이제 다 큰 ‘좋은 아이’는 부지불식간에 ‘내가 아닌’ 버려진 어린아
이가 경험했던 사건을 이제야 재확인했고, 그러는 가운데 외상 관련
부분들이 활성화하면서 이들이 지닌 암묵기억이 촉발되었다. 다시
한번 위험에 처한 ‘내가 아닌’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여전히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트라우마 치료에서 과거의 외상사건 자체가 아니
라 그것이 끼친 영향을 다루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끔찍한 경험을
인내하면서 기억해내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안전함을 느
끼는 것만큼 중요한 목표가 아니다. 내담자가 심장이 뛰는 것은 위
험 신호가 아니라 촉발된 반응일 뿐이라며 스스로 안심할 수 있는
지, 수치심・슬픔・분노를 너무 어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었던 어
린 자기들의 감정기억과 관련지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통스러
운 과거 사건은 잃어버린 내면아이들과 소외된 부분을 되찾아 도움
의 손길을 내밀고 마침내 그들을 환영하여 ‘집’으로 맞아들이고, 그
들을 안전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을 원하며 가치 있게 바라봐준다
는 것이 그들에게 느껴질 때 진정으로 해결된다고 믿는다. 임상 분
야에서 아동학대는 드문 일이 아니라 일종의 전염병이며, 치료되지
않은 외상후스트레스가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
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수십 년에 걸친 과학적
연구가 필요했다. 10년 전부터야 암묵기억이라든가 ‘트라우마에 대
한 신체반응’ 같은 개념이 점차 퍼질 수 있었지만 Ogden et al., 2006; Van der
1장. 트라우마의 신경생물학적 흔적: 우리는 어떻게 파편화되었나?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