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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per 가 쓴 《과학적 발견의 논리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
다. “극단적으로 개연성이 낮은 사건을 무시해야 한다는 규칙은 … 과학적 객
관성에 대한 요구와 상통한다.” 10
이처럼 저명한 사상가 여럿이 유사한 주장을 내놓았는데, 왜 이 주장에 보
렐의 이름이 붙은 것일까. 그 답은 ‘스티글러의 명명 법칙 Stigler’s law of eponymy ’에
서 찾을 수 있다. 스티글러의 명명 법칙에 따르면 어떤 과학법칙도 원조 발견
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는다(이 법칙에서 귀결되는 따름정리 하나는 ‘이 법칙
도 마찬가지다’이다).
보렐의 법칙은 학교에서 기하학을 공부할 때 배우는 ‘점, 직선, 평면’의 개
념과 유사하다. 우리는 이 기하학적 대상들이 수학적 추상이며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배운다. 이 개념들은 단지 편의를 위한 단순화의 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개념들을 이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이 표상하
는 현실 세계의 대상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발
생 확률이 아주 낮은 사건을 수학적 이상화를 통해 발생 확률이 0인 사건으로
취급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확률이 아주 낮
은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렐의 법칙이다.
다시 보렐의 말을 들어보자. “명심해야 할 것은 ‘가능성에 관한 유일한 법
칙’의 확실성이 수학적 확실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법칙
의 확실성은 우리가 루이 14세 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멜번 같은 지구 반대편
도시의 존재를 인정할 때 의지하는 확실성에 빗댈 만하다. 심지어 우리가 외
부 세계의 존재에 부여하는 확실성과도 유사하다.” 11
보렐은 사건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그 확률이 ‘아주 낮다’는 말의
28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