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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근을 안 한다고 했는데도 브리기테는 반드시 저녁 늦게 상담

                 을 받아야겠다며 억지를 썼다. “저녁엔 상담 안 합니다.” 이 말이 그
                 렇게 알아듣기 어려웠을까. 아무튼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선을 자꾸
                 넘으려고 해서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브리기테는 정말로 내 도움

                 을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자신에게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못마땅했으리라. 우리는 6개월 동안 띄엄띄엄 통화만 하다

                 가 마침내 만남을 잡았다.
                    브리기테는 내가 머릿속에 그려온 외모와 사뭇 달랐다. 자그만

                 체구에 흠잡을 데 없는 옷차림, 완벽하게 정리된 긴 갈색머리와 깔
                 끔하게 손질한 손톱까지, 일에도 열심이고 아이도 있는데 어쩜 그렇

                 게 잘 가꿨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브리기테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
                 고 앉아 양 손가락을 딱딱 부딪치며 긴장되고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
                 다. 나는 비로소 브리기테와 만났고 그녀를 알게 되어 기뻤다. 더 많

                 이 알고 싶었다.
                    어쨌든 브리기테가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했다는 데 심심한 존

                 경을 표하고 싶었다. 남에게 도움을 구할 사람이 아닌데 얼마나 괴
                 로웠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상담 방식에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

                 면 불안해할지 모르니 상담에 앞서 상담 방식을 재차 알려줬다. 상
                 담 비용과 횟수, 평가, 상담 내용 기록의 의무와 더불어 비밀보장 원

                 칙을 설명했다. 예외적으로 자해 및 가해의 우려가 있을 시에는 지
                 역보건의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브리기테는 눈을 내리깔고 나를 바짝 경계했다. 내게 믿음이 생

                 기려면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나는 브리기테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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