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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네 살이었던 이는 머리가 백발이 된 채로, 그리고 B-17
                  후미 사수였던 이는 대공 포탄 조각이 다리에 박힌 채로.)
                       등화관제 커튼, 기차역에서 펼쳐지는 눈물의 이별

                  장면, 온갖 걱정과 근심, 이런 것들이 우리 모두가 거대하
                  면서도 끔찍한 무언가에 말려들고 말았다는 느낌을 안겨
                  줬다. 어떤 가족은 아들이 보낸 엽서를 적십자를 통해 받

                  았는데 우표 밑에  “적군이 제 혀를 잘랐어요”라고 적혀
                  있더라는 등의 끔찍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걸
                  주워듣기도 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

                  변 어른들은 다들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

                       이 경험은 내게 남자가 된다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반박할 수 없는 두 번째 메시지를 던져줬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 외에도, 크면 군인이 되어 어딘가 낯선 나라

                  에서 적군을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아니면 고문당해 불
                  구의 몸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게 내 운명이라고 굳게 믿

                  었고, 무서운 운명과 마주칠 모습을 상상하며 긴긴밤을
                  지새우곤 했다. 대공황을 경험한 어른들이 돌이킬 수 없
                  는 상처를 입고 불안감에 빠진 것처럼, 세계대전 시절을

                  떠올리는 이라면 당시의 무섭고 불안한 기억을 새삼 되새
                  기며 공포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다. 내가 살던 곳은 전쟁
                  의 참화와는 동떨어진 미국 중서부였지만, 사방은 여전히




                                         1. 남자가 물려받은 것: 허상, 역할, 기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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