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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했다. “의지할 수 있었던 한 사람, 여기 잠들다.” 이 메
              시지는 너무나 강력해서 아버지도 나도 이 덕목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태세였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렇게

              기억되고자 했다.
                   다시 몇 년이 흘러 내가 아버지에게 생일축하 카드
              를 써 보낸 어느 날, 아버지는 우리 사이의 서먹함을 누그

              러뜨리려고 “늘 일하느라 너희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라고 말했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일해주신
              것에 대해 자식들이 늘 고마워했음에도, 우리 형제가 커

              가면서 아버지와 데면데면해지는 것을 당신 탓으로 돌린
              것이다. 언제나 가족을 위해 일하며 고통받고 우리를 대

              신해 걱정해왔음을 잘 알기에, 나는 일만 하는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작 당신 자신을 위
              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나는 잘 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도 알았다. 아버지를 위한 일은 하나
              도 없어. 하지만 남자가 된다는 건 그런 것임이 분명해.

                   내가 자라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사
              람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라디오 주변에 모여 유럽과
              남태평양에서 벌어지는 전투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툴라

              기나 민다나오같이 낯선 이름을 가진 섬, 또는 B-17 전투
              기 후미에서 싸우고 있을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걱정했
              다. (다들 결국 돌아오긴 했다. 필리핀 전선에 투입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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