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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점 더 두꺼운 껍질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

                       속되었다. 내 변덕스러운 행동 때문에 친구들은 점점 멀어졌고, 나
                       를 향한 비난이 늘어갔다. 세상은 내게 적대적이며 불공평한 곳이라

                       는 믿음만이 확고해졌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더더구나 그때껏 공부한 것들은 상황을 알아차리는
                       데도, 상황을 벗어나는 데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학과 철학

                       이 당시 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신경화학적 기계인
                       두뇌가 고장나버렸으니, 나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대

                       학을 졸업해서 내 망가진 머리를 시장이라는 거대한 강철기계 속에
                       밀어넣어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1999년에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그것을 축하라도 하듯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5년 동안 공포와 혼란의 삶을 산 뒤 2001년에 나는 사회불
                       안장애,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았다. 조사를 좀 해보

                       니, 이런 정서장애들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로 치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런던의 한 교회에서 일주

                       일에 한 번씩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을 위한 인지행동치료 지원 모임
                       이 열린다는 걸 알아냈다. 심리치료사들이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거

                       기 모인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구입한 인지행동치료 교재를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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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 하고 있었다.  연습을 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몇몇에게는 그 방
                       법이 효과가 있었다. 나도 한 달쯤 지나자 공황발작이 사라졌고, 난

                       폭한 감정을 달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건강
                       을 온전히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계선을 넘어섰

                       다고 해서 갑자기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회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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