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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암송으로 받아들인 것들이 내 안에서
곰삭습니다. 머리에 담아둔 지식을 오래오래 곱씹으면서 그 안의 의미를
유추하고 스스로 재해석해봅니다. 지식과 정보들 간의 유기적 관계를 스스
로 파악해내고 연결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통찰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과거의 현자들은 이렇게 사유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외워서 받아들이고 지식의 형태로 양적으로 축적
해냈다면,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과정에서 질적 도약이 일어납니다. 이 과
정에서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라는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질적 전
환과 상승을 경험하지요. 인류의 많은 선조들이 그렇게 지혜의 문 안으로
들어섰어요. 스스로 관계와 맥락을 만들어내고 지식들을 질서 있게 재배치
하면서 뇌 안에 지식과 정보의 인드라망 (모든 존재가 하나의 그물로서 끝없이 서로서
로 얽혀 있는 세계를 비유하는 불교 용어입니다)을 스스로 만들어냈습니다. 평생을 두
고 접하는 지식의 양이 많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통찰력과 혜안, 깊이 있는
사유가 가능했지요.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만 먹으면 허기는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잘살 수 있을까요? 그런 식품들은 자연적인 영양소나 발효 성분 등이
턱없이 부족해서, 먹는다 해도 사람에게 그닥 이롭지 않습니다. 인스턴트
화, 패스트푸드화된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끄고 미디어 환경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서 고전을 외우고
암송해봅시다. 어제 내가 소리 내어 외운 것을 다시 소리 내어 복습해보고
요. 느리지만 긴 호흡으로 사고하고 사유해보면서 지식이 지혜가 되는 발
효의 과정을 느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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