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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지 못한다고 해요. 따라서 초식과 패턴을 내 것으로 만드는 암송은 고
등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김용규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뛰어난 시와 탁월한 산문들을
낭송하고 경전의 내용들을 암송할 때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바둑기사
들이 명인들의 대국을 복기할 때, 동양화를 배우는 사람이 스승의 작품을
모사할 때, 작곡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걸작들을 필사할 때 일어나는 것과 유
사한 현상이 인간의 뇌 안에서 일어난다고요.
암송은 그렇게 익히고 수련해 고등 사고능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수
련’ 하면 ‘쿵푸’가 떠오르지 않나요? 한자로는 功夫라고 씁니다. 한글음으
로 읽으면 우리가 ‘공부한다’고 할 때 ‘공부’랑 소리가 같죠. 공부工夫는 곧
쿵푸功夫입니다. 쿵푸에서 초식을 거듭 연습해 익히듯, 암송을 통해 사고의
초식을 거듭 연습해 익히는 ‘공부’를 해봅시다.
2. 디지털 건망증, 그리고 해독하고 수렴하는 힘
여러분은 친구 전화번호를 몇 개쯤 외우시나요? 어떤 분은 가끔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도 잊는다고 합니다만, 머지않은 과거에는 전화번호 수십 개
씩 외우는 사람도 흔했고 노래방 안 가도 좋아하는 노래들을 메들리로 끝
없이 이어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가사쯤이야 통째로 외우고 있
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노래방 기기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게 엄두가 나
질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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