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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나 하나뿐인 아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가족의 사

                랑을 한 몸에 받는 오빠를 단 한 번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의 대가가 바로 기대였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가문을 빛내고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었

                다. 특권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대신 운 좋게도 무거운 짐을 짊

                어질 필요도 없었다.

                    쌀집 운영은 두 언니가 도왔고 부모님의 관심사는 오로
                지 오빠의 학업뿐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부모님의 관심에서 멀

                어졌고 운 좋게도 그런 환경 속에서 자유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이웃집 아이와 종일 밖에 나가 놀다 보니 몸도 튼튼해

                졌다.
                    사춘기 시절 평범한 외모에 키 작은 나를 좋아해주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운 좋게도 감정 소모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공부를 잘했던 나

                는 오빠의 뒤를 이어 의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대학병원
                신경과 의사로 취직했다.

                    여의사가 많지 않던 시절 내가 응급실이나 병동에서 환

                자를 처치하고 나면 가끔 보호자들이 이렇게 물을 때가 있었

                다. “의사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죠?”
                    혹은 같이 회진하는 남자 의사를 주치의로, 나를 레지던





                    1장 ◦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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