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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으니 됐다 싶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말하셨다.
“범준아, 아빠 소원이 뭔 줄 아니?”
“건강해지시는 거요.”
“아니. 네가 대학에 가는 거.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등록금
을 대기 위해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벽 6시까지는 인력사무소에
도착해야 선착순으로 주는 일을 받을 수 있어 새벽 2시부터 준비를 했
다.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인력사무소가 걸어서 네 시간 거리였기 때문
이다. 이른 시간이라 버스도 없어 꼬박 네 시간을 걸었다. 그렇게 악착같
이 버티다 결국 휴학을 했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아버지를 다시 간병
하기 위해서였다.
몇 달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막내아들 대학 가는 걸 보려고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계셨던 걸까.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으니 여한이 없으셨
을까. 가난이 원망스러웠다. 의사가 권유했던 1회에 300만 원짜리 10회
시술이 필요하다던 그 비보험 치료를 받았다면 아버지는 살 수 있지 않
았을까. 우리가 돈이 있었다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가족 모두 충격이 컸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
는지 우린 다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감
당해야 하는지,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누구
도 가르쳐준 적이 없었고 학교에서도 배운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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