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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를 어떻게든 고쳐드리고 싶었지만 열아홉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가진 장기조차 팔 수
없었다.
아버지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중산층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가난이 찾아온 건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IMF 사태가 겹치면서부터였다.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서 낡고 비좁은 다
세대주택으로 이사했고, 언제부터인가 용돈을 받지 못했다. 용돈은커
녕 고등학교 등록금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차마 등록금 달라
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정 형편 탓이었을까. 학업은 항상 뒷전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
니느라 집에 붙어 있질 않았다. 아버지와 대화할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식구들 먹여 살리고 빚 갚느라 늘 열심히 일하셨고 나는 일주일 내내
놀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어느 일요일 오후, 아버지가 배가 아프다며 대
학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큰 병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알고 보
니 못 먹는 소주를 한 병씩 마셔 가며 통증을 견뎠고 병원비가 걱정돼
며칠이면 나아질 거라며 버텼다 한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아버지의 돈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간 음
식을 못 드시다가도 입맛이 돌아오면 찾는 음식이 메기매운탕이었는
데, 그것조차 양껏 드시질 못했다. 당시 메기매운탕의 가격이 아직도 잊
히지 않는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깟 돈 3만 8,000원이 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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