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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원동력이었던 중세까지만 해도 의자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왕족과 귀족뿐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편안하게 앉거나 누

            워 시간을 보내는 것 역시 오랜 기간 인류에게 사치였다.

               그러다 갑자기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가장 구하기 쉽고 값이
            싼 에너지원은 정제곡물과 단순당이 되어버렸다. 석유화학 비료와

            살충제, 농기계 발달에 힘입어 매우 넓은 땅에서 옥수수와 밀, 대

            두를 재배하고, 저장탑에 보관한 곡식을 전 세계로 보내 가루로 만
            들 수 있게 됐다. 농산물은 오래 보관할 수 있고 표준화된 크기로

            거래할 수 있는 원자재가 되었다. 이를 공장에서 음식의 형태로 만

            든 것이 바로 대량생산할 수 있고 운송과 보관이 쉬우며 비교적 값
            이 싼 초가공식품이다. 그런데 맛도 좋다. 체내에서 혈당을 올리는


            능력인 당부하      glycemic load 가 높아서 보상회로에서 도파민     dopamine 과
            엔도르핀    endorphin 을 잘 분비시킨다.
               초가공식품을 먹으면 즐겁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통도 잠시

            잊을 수 있다. 그 즐거움을 ‘쨍한 맛’ ‘선명한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외식산업과 식품산업 모두에서 더 선명한 맛을 내는 제품이
            살아남는다. 업계에서 제품을 개발할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블라

            인드 테스트     blind test 를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쾌감을 높일

            수 있는 비율로 성분을 배합한 최종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 그런
            제품 수백 가지가 해마다 경쟁에 경쟁을 거듭한다. 같은 방식의 서

            바이벌 게임이 배달음식의 세계에서도 매일매일 이루어진다. 살아

            남는 음식은 대부분 고과당 옥수수시럽이나 설탕, 정제곡물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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