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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복사 말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사람들이 자기

                  가 실제로 들은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청
                  은 효과가 같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두 요청이 다

                  르다. 길게 늘인 요청(“실례합니다. 그 복사기 좀 써도 될까요?
                  복사를 하고 싶어서요”)은 요청에 이유를 붙였다는 점에서 세

                  번째 요청(“실례합니다. 그 복사기 좀 써도 될까요? 제가 지금
                  급해서요”)과 더 유사하다. 따라서 만약 사람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요청에 응하는 비율이 같다면 그것은 곧 사람들이 말의 내

                  용보다는 말의 형식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
                  리가 얻은 결과도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이유를

                  댈 때 더 잘 응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간에 말
                  이다. 사람들은 내용을 주의해서 듣기보다는 익숙한 형식에 기

                  계적으로 반응했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상대방이 엄청나게 큰 부탁을 하

                  거나 부탁의 이유가 지나치게 말이 안 되면(“코끼리가 쫓아와

                  서요”)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생각해볼 가능성이
                  높다. 그 밖의 경우라 해도 사람들이 요청 내용을 제대로 듣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요청 내용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이와 유사한 실험에서 우리는 발신처를 기재한 부서 간 회람
                  문을 대학교 내 다른 사무실들에 보냈다. 거기에는 그 회람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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