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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데 투자됐다.
                그래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지
            않았던가. 꽤 일찍 부동산에 눈뜬 아내 덕에 요즘 말로 일찌

            감치 ‘영끌’을 해 반포에 입성했다. 매월 내야 하는 ‘원리금균

            등분할상환액’은 외벌이 처지로는 감당이 버거웠지만 아이
            들이 집을 나서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 아무런 위해 요소가 없
            다는 것, 주변에 수준 높은 교육 기관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대출금을 갚을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경쟁이 격화되었다. 아내는 극심한
            퇴근길 교통체증을 뚫고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대치동으로
            ‘라이딩’하느라 하루를 보냈다. 아이를 좋은 대학을 보낸 엄

            마들을 만나 정보를 캐고, 좋은 그룹의 과외에 아이를 들여보

            내기 위해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들에게 커피를 사고, 점심을
            사며 사회성을 끌어모아 ‘아양’을 떨었다. 물론 그 시간에 나
            는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윗사람에게 ‘재롱’을 떨었고.

                괜찮았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의 늪에서 허둥대며 하

            루하루를 겨우 수습하며 사는 처지였지만, 퇴근 후 집에 들어
            가면 깨어 있는 아이들보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볼 때가 더
            많았지만, 곤히 자는 아이들의 볼에 뽀뽀하는 순간이 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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