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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브리기테는 과거의 자아는 죽고 없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를 여의기 전에도 존재했지만 스스로 느껴보
지 못했던 자아,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자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또한 전과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 놓이자 새로운
자아들이 발현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아
이와 기세등등한 변호사 사이를 오갔다. 어떤 자아는 다정한 엄마이
자 아내였고 또 어떤 자아는 박박 악을 쓰며 짜증내는 엄마이자 아
내였다.
브리기테는 자신의 핵심 자아가 ‘소파에 늘어진 살찐 아이’라고
했다. 나는 브리기테의 숨겨진 면을 하나 둘 알게 됐고 우리는 조금
씩 가까워졌다. 브리기테가 스스로를 비난하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이를 지적했다. 브리기테는 그 아이도 엄연히 자신의 일부인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물었다. 나는 그처럼 집요하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브리기테를 ‘고약한 자아’라고 불렀다.
나는 더 깊이 파고들어가 브리기테의 청소년기를 살폈다. 브리
기테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었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
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만이 유일한 자구책
이었다. 덕분에 성적이 좋았고 지금도 그 덕을 보고 있지만 브리기
테는 그 시절의 자아를 수치스러워했다. 하루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
지 내게 10대 때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브리기테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과 딴판이었다. 과하게 밝은 미소, 치렁치렁
한 머리, 안경, 살집이 두둑한 몸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때부터 브리
기테가 자신을 비하하면 우스갯소리로 “소파에 늘어진 살찐 아이가
93 2장 부모를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