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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네요”라고 했다.

                브리기테는 자신의 그런 모습, 어쩌면 자신의 전부인 그 모습을
             도저히 좋게 볼 수 없다고 했다. 브리기테가 ‘소파에 늘어진 살찐 아
             이’에게 분노와 혐오를 느끼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브리기테는

             자신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고 친구나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거부
             했다. 나는 브리기테가 무조건적으로 소중하며 그럴 자격이 있는 사

             람이란 걸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 존중의 씨앗을 그녀 안에
             심어두겠다고 했다. 브리기테는 자신에 대한 모질고 독한 태도를 숨

             긴 채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또 무너뜨렸다.
                브리기테는 남편 톰을 아주 깊이 사랑했다. 톰의 사랑으로 자신

             감을 키웠고, 자신을 지배하던 청소년기 자아의 왕성한 기세를 잠재
             웠다. 톰은 브리기테의 육체를 사랑했다. 몸을 바라보고 만지고 사
             랑을 나누는 데서 쾌락을 느꼈다. 그런 육체적 교감이 그들 관계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브리기테는 남편과 관
             계를 갖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처음 몇 달은 남편도 아내의 의

             사를 존중했지만 꽤 여러 달이 흐르자 그간 쌓인 불만이 분노로 뒤
             바뀌었다.

                내가 보기에 톰은 아내를 사랑하기에 화를 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하지만 브리기테는 제 코가 석자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느낄 여력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멀찌감치 거리를 뒀다. 톰은 홧김에 잔소리를 했다. 이렇게 남편도
             있고 딸도 있고 부부로서 함께할 인생도 있는데 얼마나 행운이냐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이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실 리가 있겠냐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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