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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볼 생각도 있었다. 삶의 기반을 잡아야 한다는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평범한 동네의 평범한 거리에 세놓은 집을 찾아냈
고, 별다른 생각 없이 거기서 살기로 했다. 당시에는 어른의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저 소꿉놀이하듯 살아
가고 있었다.
우리 집은 작고 약간 어두웠으며 주방이라고 해봐야 싱크
대와 가스레인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 집이 마음에 쏙 들었
다. 그리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계속 도시에 머물렀
다. 대학 때부터 계속 걸어두었던 영화나 밴드 포스터 대신 벼
룩시장에서 산 그림을 걸어둘 때도 있었다. 과일이 담긴 접시
를 그린 정물화와 해 질 녘 항구를 그린 풍경화. 그림 자체도
좋았지만 그것이 말하는 상징성,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그림
을 벽에 걸어두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좋았다.
우리는 루틴 지키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느
꼈던 강렬한 설렘과 그것이 점차 퇴색되어 가는 것이 지겨워
졌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확장해야 할 때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할 때였다. 그 표현은 우리와 거리가 먼 말이
었지만 좀 더 안정적인 삶을 꾸려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
했다.
The Anthropologists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