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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미봉책으로 포커 테이블에 팔각형으로 둘
                           러친 아크릴 칸막이가 불편해서 말이 좀 나왔다. 그 덕분에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마치 NBA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Giannis
                           Antetokounmpo의 덩크슛에 수비수가 나자빠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직원이 바닥에 떨어진 땀을 닦는 것처럼 토너먼트의 탈락자가 나오
                           면 직원이 그 자리의 칸막이를 뽀득뽀득 닦는 것으로 고별사를 대신

                           했다.
                            이 아크릴 칸막이는 마치 유령의 집에 있는 요술거울처럼 작용해

                           서 상대방을 똑바로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집중하면 잘 보였
                           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포커에서 텔tell[상대방에게 힌트

                           를 주는 말이나 행동]은 그냥 막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독심술’을 쓴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사실 텔은 의식적 관찰의

                           경계선에 걸친 미묘한 변화다. 예를 들어 손목이 살짝 비틀리면서 호
                           흡이 흐트러진다든가, 처음 받은 카드를 슬쩍 본 뒤 등이 약간 펴지는

                           모습이 시야 끝에 포착된다든가 하는 것이다(아마 좋은 카드가 나왔
                           겠지). 포커는 대체로 수학적인 게임이지만 에지edge[장기적 우위]가

                           매우 작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신호는 무엇이든 읽어야 한다.
                            아크릴 칸막이와 마스크가 존재하는 데다 한동안 사람이 많은 데

                           는 거의 드나들지 않았다 보니 나는 마치 물속에서 포커를 치는 기분
                           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불안감이 밖으로 드러났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피부로 맥박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간혹 칩을 베팅할 때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이전에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한 증상




                           *  인내심은 금세 바닥났고 몇 달 뒤에는 포커 테이블에서 마스크와 백신 접종 규정에 관한 논쟁
                           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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