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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그때까지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달관하셨군요”라는 반응이 돌아옵

                 니다. 저라는 인간이 특별히 제대로 되어서도, 달관해서도 아닙

                 니다. 역사를 알면 세상의 실체가 보이지요. 그러니 평생 출세한
                 다는 이뤄질 수 없는 환상과 현실의 어긋남 사이에서 괴로워하

                 지 않아도 됐던 것뿐입니다.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의 대시인, 단테 Dante Alighieri는 서사시
                 《신곡・지옥편 Divina Commedia∙Inferno》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 문장은 대학에 입학하고 어느 건물의 벽보에서 처음 봤습
                 니다. 당시는 1960년대 후반으로 학생 운동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입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입학한 지 얼마 안 됐

                 던 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엄청 무서
                 운 곳에 왔구나 싶었지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시골에서 유유자

                 적 생활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의 진짜 모습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인간과

                 인간이 만든 사회에 대한 순진한 기대는 버리는 게 좋습니다. 단

                 테가 말한 ‘희망’을 ‘환상’으로 바꿔도 무난할 것입니다.
                   단테의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인생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지식입니다. 계속해서 배워야만 편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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