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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인이 이룬 5년의 기적


                              마지막까지 지성의 언어를 포기할 수 없다
                    1月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문학은 깊은 우물에라도 빠진 양 한없이 암울했다. 특히 1940년
                 에서 1945년까지 해방 직전 5년은 마치 ‘문학적 무정부 상태’라도 된 것처럼 허공에 붕 뜬
                 풍선과 다를 바 없었다. 눈에 띄는 작품도 나오지 않았으며 변화도 거의 없었다. 일제의 탄
                 압이 극에 달한 탓이었다.
                   1939년에 시작된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되
                 었고, 《문장》** 등의 각종 문예지가 사라지거나 친일문학지로 탈바꿈했다. 한없이 치욕스
                 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 그 정도까지 버틴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언제든 소리 소문도 없이 죽을 수도 있는 현실에서, 백성들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올바른
                 언어를 전파하는 일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 격동의 5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소중한 문인들을 연이어 잃었
                 다는 사실이다. 1941년에는 1919년 삼일운동 시위 행사를 준비했으며 1921년에 《백조》***
                 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상화를, 1944년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민족시인 한
                 용운과 꺼지지 않는 겨레의 정신을 노래한 이육사를, 해방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2월
                 에는 별과 같은 인생을 살며 먼 후대의 기형도에게까지 시인의 꿈을 심어주었던 윤동주도
                 잃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항거한
                 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모진 고문에 또 누군가는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숨거나
                 변절을 선택할 때, 그들은 마지막까지 생명을 다해 저항했다. 목숨을 걸어도 아무런 보상
                 을 기대할 수 없었던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웃으며 자신의 삶을 통째로
                 걸었다. 가치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변절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민족의 비극을 모른 채 외면했던 사람들을 비난
                 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자신의 생명이 걸린 일에 선뜻 나서는 것은 고단한 일
                 이니까. 일제는 자기들이 시작한 전쟁의 판도가 불리해지자 그 분노를 해소라도 하듯 더욱
                 강력하게 문화 말살 정책을 벌였지만, 앞서 가신 문인들의 숭고한 정신과 순결한 언어가
                 있어 지금까지 우리의 소중한 언어를 지키며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강제 폐간: 1940년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폐간되었다. 두 신문 모두 해방 직후인
                   1945년에 복간했다.
                   **《문장》: 일제강점기인 1939년 민족문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창간한 문예 잡지.
                   ***《백조》: 일제강점기인 1922년 출판사인 문화사에서 배재학당과 휘문의숙(휘문고등학교의 전신) 출신의 문학청년들이
                   모여서 발행한 문예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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