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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님의 침묵〉


                        그대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가치 있는 말을 하라
              1月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세상을 뜬 한용운(韓龍雲)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
           이다. 시인이자 승려,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어느 한 부분 소홀함 없이 자신이 선택한 공간
           에서 멋지게 활약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이 정한 직업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은 다
           른 기준을 세우면 된다. 그에게 맞는 기준은 바로 ‘침묵’이다.
             한용운이 한참 나라를 위해 싸우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하루는 만주로 향하면서 굴라
           재라는 고개를 넘고 있었다. 키도 작고 게다가 스님이라 머리칼마저 매우 짧게 깎았기 때
           문에 멀리에서 보면 일본군으로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다. 마침 주변을 정탐하던 독립군 후
           보생 청년들이 그를 일본 군인으로 착각해서 쏜 총알이 머리에 박혔다. 당신이라면 어떤
           생각을 가장 먼저 했을까? “같은 편도 못 알아보면서 전쟁에 이길 수 있겠냐?”라며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자
           기를 쏜 사람을 욕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군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쏜 청년들
           과 일단 재빨리 그곳에서 몸을 피했고, 병원에 가서 수술할 때는 그 청년이 마음 아파할까
           걱정되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더구나 마취도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도.
             “당신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
             치료를 도운 독립운동가 김동삼(金東三)*이 경탄하며 던진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청년
           들이 용서를 빌자 한용운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오히려 청년들을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다.
             “뭘 사과할 것이 있나? 청년들이여, 아무 걱정 마시오. 나는 독립군이 그처럼 용감한 줄
           은 미처 몰랐습니다. 덕분에 이제 마음을 놓았소. 조선의 독립은 그대들 같은 용사들이 있
           어서 아주 희망적이오.”
             총에 맞아 생사를 오갈 때는 침묵했으면서, 용서를 구하며 고개를 숙이는 청년을 향해
           서는 입을 열어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언어를 선물한 것이다. 〈님의 침묵〉을 통해
           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중략 ―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비난과 조롱 등 자신의 입에서 귀한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침
           묵했다. 침묵보다 가치 있는 말을 찾기 위해서다. 언어를 향한 그의 이런 태도는 그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를 회유하기 위해 일제가 “도장만 가져와 찍으면 성북동의 땅
           20만 평을 그냥 주겠다”고 했던 적도 있다. 그의 답변은 어떤 침묵보다 아름다운 말이었다.
             “도장이 없다.”


             *김동삼: 일제강점기 서로군정서 참모장, 대한통의부 위원장, 정의부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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