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P. 18
5 최고의 책
생명과 희망을 파괴한 자가 죄인이다
1月
조국의 해방을 눈앞에 두고 타계한 시인들의 ‘민족 저항’은 이미 강제 합방의 서류에 도
장이 찍히기 전부터 싹튼 필연이었다. 그 신호탄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
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의거였다. 척살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제1대 조선 통감이었으며 네 차례나 일본 총리를 지냈고,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데 결
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중요했던 만큼 과정은 세밀하게 진행되었다. 이토가 만주에서 러시아와 회담*
을 갖는다는 소식을 접한 안중근은 당시 조도선, 우덕순, 탁공규, 김성화, 유승렬, 유동화
등과 함께 척살 계획을 세웠다. 10월 26일 오전 9시 15분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사열을 마
치고 러시아군 앞을 지나갈 때 안중근 의사는 총탄 세 발로 이토를 명중시켰다. 나머지 네
발 중 세 발로는 수행 비서들까지 쏘았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 우렁차게 외쳤다. 러시아 말
(국제어인 에스페란토어 라는 설도 있음 – 편집자 주)로 ‘대한민국 만세’라는 의미의 ‘꼬
레아 우라’였다.
이토는 바로 사망했고 의거를 치른 그해 11월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대에서 뤼순**
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심문 후에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일제의 고문
에 조금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열다섯 가지 죄를
지적하며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적장 이토를 처단한 것’이라고 당당
하게 외쳤다. 나는 그가 외친 열다섯 항목의 내용이 최근 100여 년 동안 한국에서 발행된
그 어떤 책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 정치를 한 죄
6. 철도, 광산, 산림, 농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9. 민족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 침략으로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메이지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태천황을 죽인 죄*** 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