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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믿음이 간다. 이 남자는 척 보기에도 돈이 많아 보이니
까. 그래서 당신은 속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나무판
을 구해 주지? 목재소를 떠올려보지만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사실 목재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새벽
두 시인 지금은 문을 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봐도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별수 없이 그 남자
에게 말한다. “이거 참, 도움이 못 돼 미안합니다.”
이튿날 당신이 친구 집 근처의 공사장 옆을 지나가는데 딱 그
정도 크기, 곧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210센티미터가량의 나무
판이 눈에 들어온다. 다름 아닌 문짝이다. 어젯밤에 문짝 하나만
떼어내서 그 남자에게 줬더라면 1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다.
‘도대체 왜 그 생각이 안 났던 거야?’라고 당신은 자문한다.
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이유는 어제 당신 집의 문은 당신에
겐 나무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로 90센티미터, 세로 210
센티미터의 그 나무판은 ‘문’이라는 범주에 묶여 당신 눈에 띄
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유형의 마음놓침은 ‘내가 왜 제인 생각을 못했지? 걔가
싱크대 배수관을 뚫을 줄 아는데’와 같은 식으로 대개 좀 더 일
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범주라는 틀에 갇힌 상태’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은 마음놓침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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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