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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던 사람들이 대거 문을 닫았고 대출받아 부동산을 샀던 사람
들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
나라가 망했지만 현금 부자들은 괜찮았다. 부동산을 싼값에 살 수
있었고 헐값에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었다. 은행에만 돈
을 넣어놔도 높은 이자가 붙었다. 당시 실질금리는 5~7%에 육박했
◦
다. 즉,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고도 5~7%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는 뜻이다.
재산 증식도 수월했다. ‘저축’만 해도 재산이 늘어났다. 투자를 위
해 경제나 금융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은행 금리가 두 자
릿수이고 실질금리가 7%인데 위험한 주식 투자에 선뜻 나서겠는가?
돈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은행의 시대’
였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IMF 이후 경제는 재도약
을 했고,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돈이 많이 풀렸다. 두 자릿수를 넘
나들던 우리나라 은행 금리는 5% 미만으로 하락했고 실질금리는
0~2%로 곤두박질쳤다. 예전처럼 돈 버는 느낌이 나질 않았고, 저축
을 해도 재산 증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행은 돈을 불려주던 곳에
서 맡아주는 곳으로 변해갔다. 은행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오늘날 은행 금리는 2000년대보다도 더 내려가 역대 최저 수준이
◦ 실질금리란 은행 예금금리(명목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금리를 말한다. 실질금리가 높을수록 은행에 돈
을 넣어놨을 때 돈 버는 느낌이 난다. 반대로 실질금리가 낮으면 은행에 돈을 넣어놔도 돈 버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프롤로그 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