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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들려주었다. 가족들은 아장아장 걷던 시절에 내가 정말 예뻤

              다고, 할아버지가 나를 ‘예쁜 아기 전국 콘테스트’에 내보냈을 정도

              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딜 가든 날 데리고 다녔고, 이 유대는 계
              속됐다. 아버지는 심지어 내가 청소년이 된 뒤에도 술집에 데리고

              가서 당구나 다트나 셔플보드 게임을 한 다음, 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낚시 여행을 다녔고, 때로는 낚싯

              배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이던 1950년에 사

              라토가 스프링스에서 시작된 서러브레드 경마(기수가 직접 서러브레
              드종을 모는 경주-옮긴이)와 하니스 경마(기수가 탄 1인승 2륜 마차에 스

              탠버드브레드종을 연결해서 달리는 경주-옮긴이)에도 나를 데려가기 시

              작했는데, 그 뒤로 나는 내리 63년 동안 8월마다 사라토가 경마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또 틈만 나면 송어 낚시를 한다. 나는 어머

              니와도 가까워서, 매우 어린 나이에 어머니에게서 요리와 바느질

              과 다림질을 배웠다.

                내가 네 살이던 1951년에는 가족이 포킵시에서 이사해, 나는 이
              듬해 뉴욕 코호스에 있는 세인트패트릭학교 부속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녀들이 가르치는 가톨릭 초등학교는 별 사건 없이 행

              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다. 아, 한 사건이 있긴 했다. 1학년 때

              첫 영성체 예식을 치르는 동안 내가 우스갯소리를 시작하자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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