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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마무리
41 회 46 회
1.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 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 책은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東萊先生校正北史詳節)의 일부로
이 왕 때 주자소에서 제작한 계미자를 이용하여 간행되었습니다. 성삼문이 아버지 성승 및 박팽년 등과 함께 상왕의 복
또한 이 왕 때에는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기 위를 모의하여 중국 사신에게 잔치를 베푸는 날에 거사
도 하였습니다.
하기로 기약하였다. …… 일이 발각되자, 왕이 친히 국문
하면서 꾸짖기를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였는
가?”하니 성삼문이 소리치며 말하기를 “상왕을 복위시키
려 했을 뿐이오. ……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듯이 백성
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라고 하였다.
① 유자광의 고변을 계기로 남이를 처형하였다.
② 변급, 신류 등을 파견하여 나선 정벌을 단행하였다.
③ 함길도 토착 세력이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였다.
①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을 간행하였다. ④ 인목 대비 유폐와 영창 대군 사사를 명분으로 폐위되
② 문하부 낭사를 분리하여 사간원으로 독립시켰다. 었다.
③ 경국대전을 반포하여 국가 통치 규범을 마련하였다. 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계문신제를 시행하
④ 붕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였다.
⑤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인 칠정산 내편을 편찬하
였다.
46 회 39 회
3. (가) 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4.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사헌부 대사헌 허응 등이 시무 7조를 올렸다. “…… 주·
부·군·현에 각각 수령이 있는데, 향원(鄕愿) 가운데 일
조선 시대 옥당, 옥서로 불렸던 삼기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가) 을/를 설치하고,
(가) 의 관직을 역임한 인물들 아무 때나 무리지어 모여서 수령을 헐뜯고 사람을 올리
의 성명, 주요 관직, 본관 등을 기록한 고 내치고,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이 교활한 향리보다
책이다. (가) 은/는 집현전의
심합니다. 원하건대, 모두 혁거(革去)하여 오랜 폐단을
기능을 이었으며, 직제에는 영사, 대제
없애소서.” - 『태종실록』 -
학, 부제학, 응교, 교리 등이 있다.
옥당선생안 ○ 헌납 김대가 아뢰기를, “백성을 괴롭힘은 향리보다 더한
자가 없는데, 수령도 반드시 다 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
래서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없는데, 비록 경재소가 있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더라도 귀와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규명해 낼 수가
②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3사로 불렸다.
없습니다. …… (가) 의 법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③ 검서관에 서얼 출신 학자들이 기용되었다.
만 중간에 폐지하여 이러한 큰 폐단이 생겼 으니, 다시
④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전반을 총괄하였다.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처결하였다.
- 『성종실록』 -
①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되었다.
② 대성전을 세워 선현에 제사를 지냈다.
③ 옥당이라고 불리며 경연을 담당하였다.
④ 농민들로 구성된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
⑤ 매향(埋香)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156 다섯 번째 마당 ː 조선의 성립과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