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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및해설
41 회 46 회
1. 해설 2. 해설
자료에서 계미자를 이용하여 간행,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 등을 통 자료는 ‘성삼문, 성승, 박팽년의 상왕 복위를 위한 거사’라는 말에서 세조
해 밑줄 그은 ‘이 왕’은 조선 태종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 때는 계미자 때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왕’은 조선
가 만들어졌고,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 세조이고 ‘상왕’은 폐위된 단종이다.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
도가 제작되었다(1402). 한 세조에 대한 반발로 성삼문, 박팽년 등의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꾀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정답
②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실시하고 언론 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 정답
을 견제하였다. ③ 세조는 중앙 집권 정책에 대한 반발로 함길도 토착 세력이 일으킨 이
시애의 난을 진압하였다.
오답
① 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간행되었다. 오답
③ 경국대전을 반포한 것은 조선 성종이다. ① 유자광의 고변을 계기로 남이를 처형한 것은 조선 예종 때이다.
④ 탕평비를 건립한 것은 조선 영조이다. ② 변급, 신류 등을 파견하여 나선 정벌을 단행한 것은 조선 효종 때이다.
⑤ 칠정산 내편을 간행한 것은 조선 세종이다. ④ 인목 대비 유폐와 영창 대군 사사를 명분으로 폐위된 것은 조선 광해
군 때이다.
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계문신제를 시행한 것은 조선 정조
때이다.
키워드 노트 키워드 노트
주자소, 계미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태종의 업적 - 문하부 낭사 성삼문, 박팽년, 상왕 복위 모의 거사 - 단종 복위 운동 - 당시 왕은
분리, 사간원 독립 세조 - 이시애의 난 진압
40 회 39 회
3. 해설 4. 해설
자료는 조선 시대 홍문관직을 역임하였던 사람들을 기록한 인명록인 옥 자료에서 향원, 수령을 헐뜯고, 향리보다 더한, 경재소가 있더라도 등의
당 선생안으로, ‘옥당’ 또는 ‘옥서’는 홍문관의 별칭이다. 즉, (가)는 홍문관 내용을 통해 (가)는 유향소임을 알 수 있다.
이다. 세종 때 집현전의 직제와 기능을 이어받은 홍문관은 성종 때 예문
정답
관에서 분립되었다. 홍문관의 수장이 ‘대제학’이다.
①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규찰하는 역할을 맡은 향촌 자치
정답 기구이다. 유향소에서는 좌수와 별감을 선출하여 자율적으로 규약을
② 홍문관은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3사로 불렸다. 만들고, 수시로 향회를 소집하여 여론을 수렴하였다. 정부는 경재소를
두어 현직 관료에게 연고지의 유향소를 통제하게 하였다.
오답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것은 한성부이다. 오답
③ 검서관에 서얼 출신 학자들이 기용된 것은 규장각이다. ② 성균관은 대성전을 세워 선현에 제사를 지냈다.
④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전반을 총괄한 것은 비변사이다. ③ 홍문관은 옥당이라고 불리며 경연을 담당하였다.
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처결한 곳은 의금부이다. ④ 두레는 농민들로 구성된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
⑤ 향도는 매향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
키워드 노트
키워드 노트
향원들이 설치, 수령 헐뜯고 백성 핍박, 향리, 수령 견제, 경재소 보완
옥당, 옥서, 대제학 - 홍문관 -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3사의 하나 - 유향소 - 좌수와 별감 선발하여 운영
압축개념 16 ː 조선의 건국과 통치 체제의 정비 157